더 성숙한 아이러니의 세계로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
김영하 등단 25주년을 맞이해 시작된 ‘복복서가×김영하 소설’ 시리즈 2차분 3종이 출간되었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문단과 대중에 뚜렷이 각인시킨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분단 이후 한국문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빛의 제국』,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인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이다. 7년간 지면에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오직 두 사람』은 작가로서 김영하의 내적 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의미심장한 분기점이 되는 작품집이다.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 제26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작 「오직 두 사람」이 포함되었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영하는 단편과 장편 모두에서 한국 소설 문학의 스타일을 혁신하면서 총아로 떠올랐다. 김영하는 등단 초기부터 단편으로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빛의 제국』 등의 묵직한 장편으로는 평단과 독자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드문 행보를 보였다.
2017년에 문학동네에서 초판이 출간된 『오직 두 사람』은 등단 이래 김영하가 왜 내놓는 소설집마다 평단과 독자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단편을 쓸 때의 김영하는 장편을 쓸 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반전과 아이러니, 블랙유머는 김영하 단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200자 원고지 100매 내외의 짧은 분량임에도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한 편의 짧은 장편이나 웰메이드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서사적 테크닉을 구사한다. 김영하 단편의 중요한 특징인 반전과 아이러니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독자를 끌고 감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동안 몰입하며 읽어왔던 이야기, 스스로 상상해왔던 결론을 다시 검토하도록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짧은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이야기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유려한 서사, 단단한 플롯, 반전과 아이러니로 평단과 독자를 매혹해온 김영하 단편소설의 정점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은 얼핏 사부곡처럼 보이는 딸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독자는 자신이 상정해왔던 인물들의 관계가 사실과 크게 다름을 깨닫게 된다. 독자는 앞으로 돌아가 다시 소설을 읽게 되며, 그제서야 소설의 서두에 아련한 듯 언급한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게 된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아이를 찾습니다」 역시 김영하식 단편 창작이 다다른 최고 수준의 경지를 보여준다. 강력한 사건이 있고, 심각한 갈등이 있다. 그리고 모두의 허를 찌르는 아이러니와 반전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작 부분에서 독자는 유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전개를 예상한다. 부모가 처절하게 노력하여 결국 아이를 되찾든지, 아니면 되찾는 데 실패하든지. 그런데 김영하는 지금까지 아무도 쓰지 않았고, 그렇기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리고 훌륭한 이야기꾼이 그렇듯 지금까지 누구도 쓰지 않았던 이야기를 믿을 수 없이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든다. 「아이를 찾습니다」에 대한 수많은 독자들의 평도 이를 입증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떨까 너무 두려웠다’는 평부터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쓴 것이냐’는 리뷰까지, 독자들은 작가가 지어낸 이 짧은 소설을 ‘심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김영하식 아이러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69쪽)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것, 그것이 반전이며 거기에서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그런데 김영하는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라고 묻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은 신들의 짓궂은 장난에 희롱당하는 애처로운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소설집의 마지막 수록작이 「신의 장난」인 것도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신입사원 연수의 과정으로만 생각했던 방탈출게임은 갑자기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주체성을 가진 인간,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신과 같은 존재에 의해 ‘사육되’고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박탈당하는 존재만 남는다. 인간의 눈높이에서 움직이던 소설 속 시선은 수면가스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부감으로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독자는 이제 인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케이지를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게 된다. 「신의 장난」은 판타지적 상상력을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느껴지도록 풀어내어 현실의 비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작가의 초기 단편과 맥이 닿아 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옥수수와 나」는 반전과 아이러니, 블랙유머에 더해 김영하의 전위적인 구성 감각을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시점은 어지럽게 바뀌고, 이야기의 전개는 예측불가능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유머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나는 이 중편소설에서 김영하는 작가와 독자, 출판인의 관계라는, 일반 독자들로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소재를 마치 기괴한 블랙유머가 넘치는 한편의 범죄물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신비로운 영감을 받아 창작에 열정을 불태우면서 자기를 파괴하는 낭만주의적 작가상은 철저하게 부정된다. 이야기가 분절되면서 결국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현란한 플롯도 한국문학의 전통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김영하의 서사적 기예는 이런 어지럽고 다층적인 이야기에서 더욱 빛난다. 마지막 줄을 읽을 때까지도 대부분의 독자는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가늠하기 어렵고, 다 읽은 후에는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최은지와 박인수」 「인생의 원점」 그리고 「슈트」 이 세 편 역시 구성에서 김영하의 다른 단편들과 맥을 같이 하지만, 지금까지 김영하 단편의 중요한 매력이 캐릭터의 설정에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은지는 희생자도 아니고, 악인도 아니다. 박인수 역시 악덕 자본가나 음흉한 위선자가 아니다. 선인도 악인도 없는 이야기는 한국 본격문학에는 흔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무심한 최은지의 악행 아닌 악행은 현실에서는 자주 목격되어도 문학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인간형이다. 박인수가 당면한 시련도 사건 자체로 흥미롭다. 그 시련 때문에 위선에도 위악에도 기대지 않으면서 직면한 위기를 돌파해가는 새로운 인간형이 제시될 수 있었다. 「인생의 원점」의 서진과 인아는 또 어떤가. 이 소설의 반전은 독자에게 커다란 쾌감을 주는 대신 서진과 인아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더 알고 싶어하게 만든다. 일종의 ‘아버지 찾기’를 수행하는 「슈트」의 시인에게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응원의 감정을 품지만, 그가 말하지 않은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이 함의하는 불편함 때문에 그 인물에게,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뭔가가 있을’ (186쪽) 거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민
이런 작품들로 구성된 『오직 두 사람』은 김영하 단편소설이 다다른 정점이라 할 것이다. 기왕의 서사적 기예는 더 유려해졌고, 거기에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숙한 시선과 깊은 연민이 더해졌다. 평단과 독서계도 호응했다. 작가의 모든 소설집 중에서 가장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으며 수록작들이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문학동네판이 나온 지 불과 5년밖에 되지 않아 큰 수정은 없었지만 결정판 출간을 맞아 작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원고를 다시 꼼꼼히 읽고 문장과 구성을 다듬었다. 그에 더해 한 손에 잡히는 아담한 판형과 산뜻한 디자인의 새 표지로 김영하 단편문학의 정수를 맛보려는 독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가고자 하였다.
■ 추천의 말
「오직 두 사람」은 인간의 삶에 어떤 설명을 할 수 없고 또한 불가역적인 지표들이 존재함을 암시해준 수작이다. ―제26회 오영수문학상 선정 이유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 동안 많은 작품들을 통해서 다루어져 왔지만, 김영하의 「아이를 찾습니다」는 가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중층적으로 겹쳐 놓고 있다. (…) 가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문학적 관점을 마련하고 가족문제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감수성을 새롭게 배치하고자 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한국사회와 한국문학이 기억하고 성찰해야 할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제9회 김유정문학상 심사평 중에서
「옥수수와 나」는 인간의 정신과 그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을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서사화함으로써 환상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36회 이상문학상 선정 이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들 속에 얽혀 있는 이야기는 한 편의 ‘환상특급’처럼 흥미롭고 몽환적이다. 압축적이지만 위트를 잃지 않고, 스릴러적인 구성으로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타일이 여전하다. —문화일보
김영하는 인간에 대한 위트 있는 통찰, 지적 유희,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세월이 지나도 늘 ‘젊은 문학의 기수’로 꼽혀 왔다. 그런데 이제 그가 ‘실험성’이 아닌 ‘보편성’에 더 깊이 다가갔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통각이 세심하게 발달한 채로. —서울신문
김영하는 행복과 윤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인물들의 내적 독백에 섬세하게 녹여낸다. 분위기 있으면서도 날카롭게 곤두세우는, 지적 만족감을 안겨주는 소설집. —북리스트
이 소설집은 작가의 다방면에 걸친 예술적 재능에 대한 생생하고 매혹적인 입문이 될 것이다. —커커스리뷰
■ 차례
오직 두 사람 _ 9
아이를 찾습니다 _ 45
인생의 원점 _ 91
옥수수와 나 _117
슈트 _179
최은지와 박인수 _201
신의 장난 _245
작가의 말 _281
■ 저자 소개
지은이 : 김영하
소설가. 장편소설로 『작별인사』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소설집으로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호출』이 있다. 여행에 관한 산문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으로 『보다』 『말하다』 『읽다』의 합본인 『다다다』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 책 속에서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저 낯선 몸뚱어리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허망한 존재에게 인생이 바쳐졌구나 싶어요. 저는 저 사람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바이털 사인이 꺼지고 더이상 저 육체로부터 아무 반응도 받아오지 못한다면, 아빠가 마침내 의학적으로 사망한다면, 한동안은 좀 막막할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자주 생각하게 돼요. 뉴욕에 있었다던 그 두 사람,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에 대해서요. _「오직 두 사람」
십 년간 그는 ‘실종된 성민이 아빠’로 살아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것이 끝나버렸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불행이 익숙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_ 「아이를 찾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힘든 순간을 겪을 때마다 서진은 돌아가고 싶었다. 인생의 원점, 자신이 떠나온 곳, 사람들이 흔히 고향이라 말하는 어떤 장소로. 그가 누구인지 모두가 아는 곳으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_「인생의 원점」
“ (…) 내가 이렇게 병상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느끼는 게 뭔지 알아?”
“무슨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것 같은 개소리 할 거면 집어치워. 죽을 때 죽더라도 약은 팔지 말자.”
“살아오는 동안 내 영혼을 노렸던 인간들이 너무 많았다는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이 갑자기 주먹을 뻗었다. 병자답지 않은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렇지, 주먹이 날아오면 이렇게 잘도 피하면서 왜 영혼을 노리는 인간들에게는 멍하니 당하냐는 거야.” _「최은지와 박인수」
나는 우울을 믿어. 인간은 천둥이 치고 비가 퍼붓는 궂은 날씨에는 울적하도록 진화했어. 가만히 동굴에 틀어박혀서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는 게 유리하거든. 에너지를 아끼면서 말이야. 인류가 이렇게 진보한 건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끝없이 자신의 과오에 집착해온, 나 같은 우울증 환자들 덕분이야. 그들은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아. 스스로를 과신하지도 않고. 그래서 살아남은 거야. _「신의 장난」